[주거의 사회학]“결혼·출산 나중에”… 집에 발목잡힌 젊은세대의 미래

[주거의 사회학]“결혼·출산 나중에”… 집에 발목잡힌 젊은세대의 미래

경향신문 | 특별취재팀 | 입력 2010.04.11 18:03



결혼과 출산은 젊은 세대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88만원세대는 일자리 부족과 낮은 임금 때문에 연애조차 힘겨워하고, 젊은 부부들은 양육비와 미비한 보육시설 등 때문에 아이 낳기가 버겁다고 말한다. 여기에다 주택비용이 상승함으로써 소득과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더불어 미래세대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경기불황이 심해진 지난해 혼인은 8년 만에 가장 많이 감소해 전년보다 1만6000건(-4.6%)이 줄어들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9년 출산통계 잠정결과'에서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15명으로 세계 최저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결혼하자니 집값이 부담스럽고, 아이를 낳자니 양육비와 집값의 이중부담에 허덕이게 되는 구조다. 집값은 우리의 미래를 잠식하고 있다.

올해 1월에 결혼한 유영민씨(33·가명)는 지난해 7월부터 신접살이할 아파트 전세를 구할 때의 고생을 잊지 못한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뒤지고 서울 마포, 영등포, 강서, 양천, 용산, 서대문부터 경기 일산까지 부동산 20군데를 넘게 돌아다녔지만 집이 없었다. 중개업소에서는 "1억원 미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며 박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82.6㎡(25평), 방 3개짜리 아파트 전세를 구했지만 1억6000만원의 보증금 중 부모로부터 1억원 이상을 빌렸다. 총 결혼비용에서 주거비가 80%이다. 2000년에 8278만원이던 신혼부부 평균 결혼비용이 주택비용 때문에 10년 만에 2배(1억7245만원)가 됐다는 뉴스가 남의 말이 아니었다. 유씨는 "우리나라 신혼 부부들은 부모 도움 없이 집을 얻을 수가 없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도리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신혼부부가 주택마련을 위해 지출한 전체 비용 중에서 본인들 저축이 약 50.1%, 양측 부모로부터 도움 받은 게 43.1%인 반면 금융기관 대출은 6.8%에 불과하다.

게다가 요즘 전세시장에 수요는 많고 공급은 부족하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싼 아파트 전세가 많이 사라졌다. 수도권에서 1억원 이하의 전세 아파트가 1년 사이에 10만가구나 줄어들었다는 집계도 있다. 신혼의 단꿈과 2세 계획은 전세보증금 대출의 무거운 그림자에 눌린다.

"아이요? 능력만 되면 네 명도 낳고 싶죠. 형제로 자랐는데 둘은 좀 아쉬웠거든요. 하지만 지금 집값과 교육비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결혼하고 씀씀이가 확 줄었어요. 애 하나 기르는 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억원이 든다잖아요."

통계청 자료를 보면 결혼후 주택마련 소요기간은 2008년 기준으로 '14년 이상' 걸린다는 응답이 전국 20.7%, 서울 22.6%에 달한다. 10년 이상 걸린다는 응답은 전국 34.3%, 서울이 36.5%였다. 그나마 집값이 더 오르기 이전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현재 젊은이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그나마 전세라도 마련할 수 있으면 운이 좋은 편이다. 서울 소재 중소기업에서 5년째 비정규직으로 근무 중인 한모씨(32)는 지난해 말 만 2년 넘게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예비 장인이 "결혼을 한다면 아파트 전세를 마련해올 것"을 기대했지만 한씨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한씨의 월급 실수령액은 약 150만원. 허리띠를 졸라매도 모을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는 데다, 몇 년간 쌈짓돈을 부은 펀드는 지난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반토막이 났다. 그의 부모 역시 1997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집을 잃은 터라 여력이 없다. 한씨는 "대학등록금을 대느라 고생한 부모에게 집을 마련해달란 얘기를 차마 못하겠다"면서 "아버지도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형편"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경기가 좋지 않아 회사의 앞날이 불안한데, 앞으로 소득수준이 얼마나 더 나아질지 알 수 없으니 "가난한 자에게 결혼은 사치가 된 게 요즘 세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안정적인 취업 전까지 애인과의 결혼을 미루겠다' '돈 없는데 연애는 사치'란 청년들의 얘기가 드물지 않다.

불안정한 직장과 소득감소는 젊은층이 결혼을 망설이게 되는 큰 이유다. 결혼문제는 돈문제고, 돈은 곧 주택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말 전국 미혼남녀 약 69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제위기에 따른 고용불안의 영향으로 결혼의사를 가진 미혼남성은 전체의 75.7%로 2005년(82.5%)보다 6.8%포인트 낮아졌다. 결혼희망연령도 남성이 평균 32.1세, 여성은 30.6세로 2005년(남 31.8세, 여 29.7세)보다 거의 1년 늦춰졌다. 결혼 후 '자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응답도 남성이 24.3%, 여성이 24%에 불과했다.

세태도 바뀌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배우자 선택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성격'은 96년 73.0%에서 2008년 55.0%로 감소한 반면, '경제력'은 5.4%에서 17.3%로, '장래성'은 5.4%에서 9.9%로 비중이 커졌다. 97년 팍팍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물질적 능력이 결혼생활의 중요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혼인 딸 둘을 둔 김모씨(55)의 말이다. "예전같으면 둘이서 열심히 일하고 모으면 집 한칸 살 수 있었겠죠. 성실성 하나 믿고 딸 보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세상이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는 데다 임금은 쥐꼬리만하지, 구조조정은 불쑥불쑥하지…. 솔직히 전세 아파트 한 칸 마련하지 못하는 남자한테 고생하라고 딸 보낼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택문제는 부모세대의 노후대비와 자녀세대의 주택마련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통계청의 '저축목적 1+2순위' 2008년 자료에 따르면, 자기소유 집에 거주하는 경우 절반 이상이 노후대비를 하고 13.2%가 자녀주택, 결혼자금 마련에 돈을 붓는 반면, 세입자의 경우 33%만이 노후대비를 하고 자녀주택은 7.8%만이 대비하고 있었다. '무주택자'라는 주택시장의 지위가 대물림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대출을 받아 주택보유자로 출발하더라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정상영씨(36·가명)는 2005년에 결혼했다. 그런데 둘째 아이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 달에 주택구입대출 이자비용 100만원에 아이 유치원 비용까지 더하면 살림이 팍팍하다. 82.645㎡(25평)짜리인 정씨의 집은 시가 4억원. 전세로 시작할까 고민했지만 "집을 안사면 손해인 것처럼 사회 분위기가 조장돼 있다보니 무리를 해서 집을 구입하게 됐다"고 그는 털어놨다. "끊임없이 이사다녀야 하는 세입자 생활이 고달프기 짝이 없잖아요. 그래서 다들 조금이라도 여유가 된다면 빚을 지고라도 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출산을 미루려고 했으나 2006년에 아이를 갖게 됐다. "이미 빚부담이 적잖은데 또 아이를 낳는 것은 빚이 불어나는 비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라는 게 이들 부부의 판단이다.

정씨의 동생(34·가명) 역시 출산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105.7㎡(32평)짜리 오피스텔에다 신접살림을 차렸다. 매입가격 5억원 가운데 3억원을 은행에 빚졌다. 그는 "나도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얻으려는 환상을 못버린 30~40대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자 꼬박꼬박 내서 은행에 돈 벌어주고, 집값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면서도 집을 놓지 못하는 게 현실이더군요. 머릿속에 부동산 신화가 박혀있는 것 같아요. 돌이킬 수 없다는 기분이 들어요."

한국결혼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신혼부부의 전월세 비율은 감소하고 자가비율은 늘어나는 추세다. "2005년 전월세로 시작한 부부와 비슷한 규모의 자가 형태로 시작한 부부가 2006년 이후 부동산 차익으로 현격한 경제적 차이를 경험"하게 되면서 "2007년 이후에는 신혼부부들이 큰 가격상승이 예상되는 30평형 규모의 주택을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부모가 자식에게 집을 사줄 여력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집 마련 문제로 결혼과 미래마저 어려운 현실로 내몰리는 셈이다. 「아파트에 미치다」를 쓴 전상인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는 이에 대해 "20~30대 초반의 사회 신참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살 집을 마련할 수 있게 하는 청년주거복지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임대아파트에서 큰 부담없이 자력으로 인생을 출발하고, 모기지 혹은 저당대출제도를 이용해 자기가 살 집을 평생에 걸쳐 장만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안정적으로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