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하고 싶은 직장 1위’ SAS 가보니…

2010. 5. 13. 20:39건축의 외계


미국 ‘일하고 싶은 직장 1위’ SAS 가보니…

한겨레 | 입력 2010.05.13 16:00 |


 
[한겨레] 병원·유아원·미장원 등 복지시설에 정년·비정규직 없어

34년간 적자 안내…회사-직원 믿음이 고객만족 이어져

궁금했다. 올해 < 포천 > 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1위로 선정된 '쌔스(SAS) 인스티튜트'는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직원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도 어떻게 회사는 날로 발전할 수 있는지….



 

비즈니스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세스는 1976년 설립된 이래 34년간 단 한 번의 적자도 없이 매년 평균 15% 정도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3억1000만달러였다. 부채 또한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쌔스는 이보다 정년, 정리해고, 야근, 비정규직이 없는 회사, 최고의 사원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로 더 유명하다. 복지가 잘된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영장, 휘트니스센터 등 다양한 스포츠시설 외에도 병원, 프리스쿨(유아원), 상담센터, 세탁소, 미장원 등 다양한 시설이 회사 울타리 안에 다 들어있다.

지난달 22일 방문한 노스캐롤라이나주 캐리에 위치한 쌔스 본사는 고즈넉한 대학 캠퍼스 같았다. 회사는 실제로 '쌔스 캠퍼스'로 불린다. 300에이커(36만평)의 부지에 25개의 건물이 숲속 여기저기에 듬성듬성 솟아있었다.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매끈하게 정돈된 녹색 잔디와 깔끔한 정원이 인상적이었다. '정원사까지 모두 정규직을 쓰면 이렇게 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짐 굿나이트(66) 회장은 노타이 차림에 느릿느릿한 말투 때문에 옆집 아저씨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하다'는 경영철학은 분명했다.

1시간 가량의 인터뷰 뒤, 직원들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대학 졸업 뒤 18년간 이 회사만 다녔다", "두 번 해고당하고, 여기가 3번째"라는 등 사연은 다양했지만, 한결같이 "여기가 마지막 직장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식사 뒤, 자동차를 타고 회사를 둘러봤다. 4명의 의사, 40여명의 간호사가 있는 사내병원은 직원과 가족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물리치료사, 심리상담사 등을 합하면 이 병원에만 56명의 직원이 있다. 임신 테스트, 알레르기 주사, 정신과 치료까지 받을 수 있다. 수영장, 에어로빅, 요가, 농구, 라켓볼, 테니스장, 마사지샵 등이 몰려있는 레크레이션 센터에는 점심을 먹은 직원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 곳마다 1~2명의 강사가 있었고, 이들은 모두 쌔스 정규직원이다. 센터 옆 미장원에서 머리를 맡긴 사람, 머리를 손질하는 사람 모두 쌔스 직원이다.

미취학 아동이 다니는 프리스쿨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운영돼 직원들이 아이와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한다. 점심시간에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기도 한다. 외부 프리스쿨 한 달 비용이 1500달러인데, 이곳은 410달러다. 4명의 아들을 키우며 8년째 쌔스에 근무중인 데지리 애드킨스(39)는 위로 3명이 이 프리스쿨을 거쳤고, 막내가 지금 다니고 있다. 그는 "사내 프리스쿨이 없었다면, 돈도 돈이지만, 나는 아이들 돌보느라 회사를 다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프리스쿨에는 작은 역사가 있다. 지난 81년 쌔스 초창기, 유능한 여직원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아이들 양육 때문이었다. 회사는 그때 프리스쿨을 만들었고, 6명의 아이로 시작했다. 지금은 600명이 넘는다. 그리고 50이 넘은 그 여직원은 지금도 이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처럼 쌔스의 사원복지 프로그램은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회사 초창기에는 프리스쿨을 세웠고, 그 다음에는 중고생 자녀들의 진학 상담소가 설립됐고, 이어 재무·법률 상담소, 그리고 직원들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서 이제는 은퇴후 프로그램 안내센터, 노인건강 센터 등이 들어서고 있다. 회사는 정년퇴직이 없고,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지 않으니 50살 이상 직원들이 전체 직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짐 데이비스 부회장(52)은 "나이든 사람들의 경험이 회사의 큰 자산"이라며 "이직률이 낮아 직원 채용 비용도, 교육비용도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데이비스 부회장은 종이에 '직원-고객-회사'를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을 그린 뒤, "많은 회사들이 고객을 가운데 놓고, 회사와 직원이 여기에 몰두하는 불완전한 삼각형 경영을 해왔다. 그러나 '회사-직원' 연결을 등한시 한 채로는 '고객 만족'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고객 만족을 위해 고객에 더 힘을 쏟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직원과 회사의 연결고리를 튼튼히 하면, 고객만족은 저절로 되는 것"이라는 쌔스의 경영철학을 설파했다.

쌔스 직원들은 주당 35시간을, 그것도 근무시간을 자기가 정해서 한다. 그리고 신입사원을 포함해 모든 직원들에게는 개인 방이 주어진다. 그러니 회사 사무실이 긴 복도에 작은 방만 이어지는 교수 연구실 같다.

재무 파트에서 일하는 메리 디튼(35)은 "회사 직원은 동료인 동시에 아이 친구의 부모이기도 하다. 그 가족들도 다 안다.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질문을 던졌다. '만일 회사가 어려워져 프리스쿨도 문을 닫고, 복지 프로그램도 끊고, 월급도 줄어든다면, 그래도 이 회사를 다니겠느냐'고. 그는 곧장 답했다. "물론"(Absolutely)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나는 사원복지 때문에 이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들의 학교 행사 때문에 3시에 회사를 떠나도 이를 의심하지 않는 상사, 딸아이 학교 자원봉사 때문에 늦게 출근해도 나를 비판하지 않는 동료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믿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 회사를 다니는 가장 큰 이유"라며 "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고, 그리고 (회사와 동료에 대한) 충성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 회사는 내 집과 같은 곳이다. 그런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나는 회사와 동료들이 능히 극복하리라 믿고, 나도 같이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쌔스의 임금은 다른 정보통신(IT) 기업들과 비슷하다. 직원에게 물었다. '혹 고임금과 스톡옵션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정글같은 월스트리트로 가고, 그리고 쌔스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쌔스에 오는 것 아니냐'고. 그는 웃으며 "그런 것 같다"며 "그래서 회사 사람들이 다들 착한건가?"라고 되물었다. 쌔스에 들어서면서 품었던 궁금증이 조금은 풀린 것 같기도 하다. 쌔스는 굿나이트 회장이 만들어준 '꿈의 직장'이라기 보단, '같은 꿈'을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쪽에 더 가까운 듯하다.

쌔스를 떠나는 길, 차창 밖으로 머리 벗겨진, 내일모레 환갑일 것 같은 한 직원이 웃통을 벗은 채 반바지 차림으로 언덕길 조깅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캐리(노스캐롤라이나)/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