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산업 클러스터를 가다 / 덴마크ㆍ스웨덴 `외레순 클러스터`◆
코펜하겐 국제공항에서 차로 30분가량 이동하면 장장 15㎞에 이르는 거대한 다리가 나온다.
다리 이름은 `외레순 브리지`.
덴마크 동부지역과 스웨덴 서부지역간 경계선인 외레순 해협을 잇는 이 다리는 양국을 연결하는 물리적인 교통로이자 이 지역에 세계적 식품클러스터인 `외레순 클러스터`가 자리잡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식품산업 집적단지 중 하나로 꼽히는 외레순 클러스터는 덴마크 동부 코펜하겐 지역과 스웨덴 서부 말뫼 지역을 중심으로 약 2만900㎢에 걸쳐 형성됐다.
이 지역에서 식품산업을 통해 창출하는 매출 규모는 연간 480억달러. 이 중 60%가 수출로 일궈진다.
이는 단순한 식품산업 매출 규모만을 집계한 것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따른 간접적인 경제창출 규모까지 감안하면 금액은 3~4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 경제위기 극복 위해 클러스터 설치 = 이 지역에 산업클러스터가 구축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다.
80년대 후반 덴마크 경제상황은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실업률은 16%에 달했다.
인구는 계속 줄어들었고 유럽연합 통합을 앞두고 시장이 완전 개방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다국적기업들과 무한 생존경쟁을 펼쳐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당시 덴마크 기업들은 대부분 직원 10~30명인 영세 소규모여서 위기를 기회로 바꿀 능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오죽하면 기업들 사이에 "다시 농경사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정부 차원에서 다국적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에서 받은 진단결과도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기업 규모가 너무 영세해 다국적기업과 경쟁해 생존하기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한마디로 국가 산업 전체가 붕괴위기에 놓인 셈이다.
국가 차원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덴마크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영세한 기업과 연구기관을 묶는 `네트워킹`이었다.
이에 따라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영세기업들을 삼삼오오 묶고 이를 다시 거대한 덩어리로 연계하는 네트워킹이 시도됐다.
물론 네트워킹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바이킹의 후손`답게 덴마크 국민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기업이 소규모 위주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협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다.
하다못해 회의시간 하나도 제대로 맞추질 못했다.
이에 덴마크 무역산업국은 1989년 `전략 1992 네트워크 플랜`을 내놓게 된다.
이를 통해 덴마크 정부는 "이러다 모두가 죽는다"는 위기론을 역설하고 국민들 사이에 `잘 살아보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노력했다.
이와 함께 당시 돈으로 2500만달러(약 250억원)를 쏟아붓기로 결정한다.
정부의 이 같은 노력 덕분으로 기업들 사이에 위기의식과 함께 생존을 위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때 낙농업으로 유명한 외레순 지역은 농민들과 식품업체들이 집결해 거대한 식품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오늘날 세계적인 식품산업 메카로 불리는 `외레순 클러스터`가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 1000여 개 식품업체가 위치 = 외레순 식품 클러스터는 원재료를 공급하는 농업종사자와 현지 연구개발(R&D) 기업, 제품화를 지원하는 패키징ㆍ공정개발 기업, 대학 등 식품관련 연구개발(R&D) 기관, 업체별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기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덴마크와 스웨덴 현지에서 생산된 곡물 우유 육류 등 농축산물 재료들은 클러스터 내 식품기업들에 의해 가공과정을 거쳐 제품으로 태어난다.
△우유 요구르트 치즈 등 유제품을 제조하는 크리스찬 한센, 알라 푸드, 스케인 다이어리 △맥주 제조사인 칼스버그 △설탕과 식품첨가물 분야 세계 1위 업체인 데니스코 △식품첨가용 효소 개발업체인 노보자임과 노보 노디스크 △아이스크림 등 빙과류 제조업체인 랜트만넨 등 대기업 80여 개를 포함해 총 1000여 개 기업이 제조자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 네덜란드 유니레버, 스위스 네슬레 등 다국적기업 지사들도 자리를 잡고 있다.
세계 우유팩 가운데 70% 이상을 생산하는 테트라팩과 플라스틱ㆍ특수종이를 이용한 패키징 전문 기업인 렉삼은 식품 제조기업들이 만든 제품을 보다 먹음직스럽고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일을 맡는다.
알파 라발 등 업체는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공정을 개발해 보급한다.
연구개발 기관들은 기업들에 새로운 기술을 이전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하는 젖줄 노릇을 한다.
그 중심에는 룬트대학, 덴마크기술대학, 코펜하겐대학, 스웨덴농업대학 등 14개 대학이 있다.
기능성식품 과학센터와 각 기업 연구개발센터가 연구능력을 더한다.
각 기관간 정보공유와 세미나 등 네트워킹 작업은 클러스터 사무국이 맡는다.
현재 8개 대형 공동연구 프로젝트가 클러스터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무국은 이와 함께 자금이 필요한 업체를 발굴하고 정부와 외부기업에서 매칭펀드 형태로 설립한 자금을 활용해 지원하는 일도 수행한다.
[덴마크ㆍ스웨덴 = 이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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