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울역의 집 - 세일러

2009. 2. 19. 17:08건축의 내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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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이라는 것 몽골의 집

2.   여러 가지 집들

3.   내 손으로 짓는 집

4.   통나무집과 소로우, 감옥과 신영복

5.  서울역의 집

6.  아파트 공화국

 

 

제가 서울역 지하보도에서 아래의 집과 마주쳤던 것은 아마 재작년 초겨울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받은 인상이 강렬해서 집주인에게는 실례되는 일이겠으나, 핸드폰의 카메라를 켜고 몰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뒤로 이 집이 잘 있나 보기 위해 두어번 근처를 지나는 길에 들러보기도 했는데, 갈 때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어떤지 가보지 못했습니다.

 

처음 이 집을 보았을 때, 서울에서 가장 원초적형태의 집을 마주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렬한 느낌을 받았던 이유 중 또 하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태일 평전이라고 생각되는데(아닐 수도 있습니다), 소년 전태일이 동생과 같이 무작정 상경했던 이야기입니다.

 

소년 전태일은 동생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옵니다. 서울에 올라온 첫날 밤이 되어 잠을 자야 하는데, 돈이 거의 없으므로 최대한 아끼기 위해 골판지 상자를 사서 서울역 지하보도에 집을 꾸미고 잠을 잡니다.

 

다음날 아침 전태일은 돈을 벌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시내로 나가면서 동생에게 남아서 을 지키도록 합니다. 돈이 거의 없는 형제에겐 골판지 집도 엄연히 내 돈이 들어간 이었고, 밤이 되면 다시 골판지 집에서 자야 하니까요.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온 전태일에게 동생은 울면서 제발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합니다. 낮 동안 집을 지켜내기 위해 주변에 많이 시달렸던 모양입니다. 결국 동생의 애원 때문에 전태일은 상경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왠 일인지 모르겠는데, 책의 이 구절은 계속 기억 속에 남아있었고, 지하보도에서 이 집을 보았을 때 바로 그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소년 전태일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면서, 소유든 임대든 서울에 내 몸을 쉴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을 마련해서 살고 있는 여러 형태의 집주인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서울역 지하보도의 이 집 주인은, 집을 이 자리에서 계속 지켜내기 위해 아마도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투쟁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 투쟁의 대상은 공권력일 수도 있겠고, 밤거리의 불청객들일 수도 있겠지요.

 

이 대도시 서울에서 내 몸을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어찌됐든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원초적 형태의 집을 마주하고서, 대한민국에서 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원초적 의미에서 집은, 이슬을 막고 추위를 막고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입니다.

 

집이 이렇게 소박한 것이면 좋겠는데, 대한민국에서 집은 투자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오늘날 우리들은 그로 인해 너무 큰 희생과 비극을 치러내고 있습니다.

 

소로우 식으로 표현하자면,

 

가련한 사람들이 등에 진 짐의 무게에 눌려 깔리다시피 한 채, 길이 9.4m, 9m 정도 되는 32(84) 아파트를 죽을 힘을 다해 밀고 가느라 힘든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평수 넓히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도 시달려야 합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요? 사람들이 탐욕 때문에 투기를 하기 때문일까요?

 

가끔 주택가격 폭등이 사회문제가 되면 으레 투기꾼들이 희생양으로 끌려나오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개인들의 투기문제로 돌리는 것은 본질을 감추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과 일본은 전세계에서 부동산 중심 경제성장 전략을 채택한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국가정책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면 경제를 성장시키기가 손쉬워집니다.

 

문제는 그러한 전략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빈부격차를 야기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은 언제나 적정한 선에서 멈추지 못하고 과도한 상승(거품)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그 거품이 터졌을 경우 국가경제에 커다란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인구수에 비해 국토면적이 적은 나라의 경우 그 부작용은 더욱 커집니다.

 

이 부동산 중심 성장전략을 구사함으로써 고속성장을 이룬 일본은 결국 91년에 부동산 버블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 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침체기를 겪어야 했고,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에서 제대로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에서 그 전략을 배워온 우리도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통하여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앞서갔던 일본처럼 부동산의 버블이 터지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요.

 

이성태 한은총재의 전임인 박승 총재는 경제발전론을 전공한 학자로서, 부동산 중심 성장전략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재임기간 중 기준금리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당시 신문기사를 돌아보면 부동산 가격의 상승기임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경제위기가 온다는 위협이 언론을 도배했습니다.

 

박승 총재는 퇴임 직전에도 언론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비난을 감수하며 주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인상합니다. 중립 수준의 기준금리는 만들어놓고 후임자에게 넘겨야겠다는 취지의 변이 인상깊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후임 이성태 총재도 같은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기준금리를 높이는데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기 위해 종부세 제도가 도입되었고, 투기를 조장하는 분양제도의 틀이 개선되었고, LTV, DTI 규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이 시점에 저는 아 이제 연착륙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전세계의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는 와중에도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아직까지는 견뎌내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전세계적인 유동성 팽창기에 뒤늦게(일본이나 우리에 비해서) 부동산에 맛을 들였던 아이슬랜드, 아일랜드, 미국, 스페인, 영국, 두바이, 중국 등에서 부동산이 벌써 무너지고 있음에 비해 우리 나라 부동산 시장이 아직까지 견디고 있는 것은,

 

두 분 한은 총재의 노력과 LTV, DTI 규제를 위시한 부동산 관련 제도의 개혁 때문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2,3년만 뒤에 터졌더라면, 그리고 현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 등 제도의 후퇴가 없었다면 아마 연착륙으로 갈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역사의 흐름은 우리에게 2,3년의 시간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난 수십년간 이어져온 부동산 중심 성장 전략에 따른 후유증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으리라 봅니다.

 

우리 나라의 부동산 중심 전략은 일본과도 또 달랐습니다. 일본은 토목이 위주입니다. 우리는 주택 중심, 그 중에서도 아파트 중심의 전략을 써왔습니다. 그 결과 부작용이 일본보다도 더욱 커졌습니다.

 

원래 아파트 문제를 같이 쓰려고 했으나 다음 글로 돌리겠습니다. 다음 글은 내일까지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