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29. 22:35ㆍ건축수필
“질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는 아이스테시스(감각)에 대한 이성의 우위라는 이 수천 년 묵은 전통적인 도식을 뒤집는 반전이라 할 수 있다.”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편집자 리뷰
들뢰즈의 감각으로 바라본 베이컨의 외치는 “고기들”
20세기의 세계적인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 그는 무정형에서 정형으로, 정형에서 무정형으로 이행하고 있는 기괴한 형상, 푸줏간의 살덩어리와 같은 형상을 즐겨 그렸다. 그가 그린 이 심하게 두들겨 맞은 듯한 고기들은 고통 받는 모든 인간, 뒤틀리고 일그러진 사람의 형상이다. 그런데 금세기 최고의 석학 질 들뢰즈에게 베이컨의 이 기괴한 형상들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화가와 작가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신의 예술을 다른 수단을 빌려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베이컨과 들뢰즈는 이 공통의 장에서 만나 서로에게 자신의 수단을 빌려주고 도움을 받고 있다. 들뢰즈의 해박한 철학, 예술, 문화적 지식이 베이컨이 자신의 그림을 통해 다 하지 못한 말들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들뢰즈는 그가 베이컨의 그림에서 느낀 감각들의 총체를 글로써 전이시켜 우리 감각의 촉발을 돕고자 노력한다. 회화라는 것이 감각을 자극한 생의 힘과 리듬을 포착하여 독자의 감각을 통해 그 힘을 다시 재주입하려는 것이라면, 그들이 하는 작업이야말로 분명 가장 높이 평가받아야 할 작업이다.”(역자)
베이컨은 주관이 바라본 대상을 그리지 않는다. 가시적 사물의 재현을 포기한 그가 그리고자 한 것은 바로 ‘감각’ 그 자체인데, 감각은 “세상에 있음, 즉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이다. 이러한 베이컨의 작품 세계를 들뢰즈는 근대의 재현적 인식 모델의 파괴로 해석한다.
베이컨의 작품에서 자주 인간과 동물은 하나가 된다. 인간의 얼굴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머리가 솟아나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형체가 된 그림을 근거로 인간을 동물 위에 올려놓는 인간중심주의는 무효가 된다. “고통받는 인간은 동물이고 고통받는 동물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또 들뢰즈는 구조, 형상, 윤곽만으로 이루어진 자칫 단순해 보일 수 있는 베이컨의 그림들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읽어 낸다. 이 힘은 리듬에 의해서 나타나는데 들뢰즈는 유기체가 아닌 신체 자체에 의해 느껴지는 원초적 감각 속에서 리듬을 발견해 내고 리듬과 감각의 관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힘, 즉 에너지를 느낀다.
특히 베이컨 그림에서 보이는 긴장감은 시각을 격렬하게 충격하고, 마침내 눈으로 만지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 공간은 이제까지의 회화에서 보여 왔던 명암의 대비에 의한 공간이 아니라 수축과 흩어짐에 의해, 혹은 마치 고대 이집트 예술에서처럼 따뜻함과 차가움의 대비로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이것이 윤곽과 빛에 의존해 온 이전의 회화를 뛰어넘어 색을 중시한 이 독창적인 천재, 베이컨의 회화라고 들뢰즈는 말한다.
“베이컨이 지나온 도정은 끝없는 선택과 포기, 그리고 선택된 요소들의 새로운 종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새로운 종합을 통해 감각은 눈에 보이게 되며 이렇게 포착한 감각을 우리는 형상이라고 부른다. 형상은 만지는 눈에 호소하는 전통적이면서도 언제나 새롭고 참신한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포착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이것이지만 아울러 이 책이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또 하나의 장점은 들뢰즈의 통찰에 기대어 예술사를 한눈에 일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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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