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파트는 정말 안전한가? (아파트 공화국 3) - 세일러

2009. 2. 19. 17:18건축의 내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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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것 – 몽골의 집

2.   여러 가지 집들

3.   내 손으로 짓는 집

4.   통나무집과 소로우, 감옥과 신영복

5.   서울역의 집

6.   아파트 공화국

7.   아파트와 세대론 (아파트 공화국 2)

8.  아파트는 정말 안전한가? (아파트 공화국 3)

 

 

안녕하세요? 글이 예상보다 좀 늦어졌습니다.

 

아파트가 대한민국 중산층의 최고 관심사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파트에 관한 제 글과 관련해서 댓글을 통하여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비교하는 많은 글들을 올려주셨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직도 아파트와 단독주택에 관한 선입견 내지 통념이 강한 듯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해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아파트의 대안으로 꼭 단독주택 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재개발 사업을 벌인다면 단독주택과 3층짜리 타운하우스, 5층 정도의 연립주택, 모두가 같이 이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을, 스카이라인과 동선을 고려하여 배치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일단 아파트와 가장 대비되는 주거형태가 단독주택이니 단독주택 위주로 비교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건초님께서 올려주신 글을 참고했습니다. 건초님은 아파트를 옹호하기 보다는 단독주택의 논리를 철저하게 검토해보자고 종합해서 올려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ㅇ 아파트의 편리성

 

아파트가 단독주택보다 편리하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생각이 형성된 것은 초기 아파트 입주붐이 불던 시절,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에 형성된 것으로 봅니다.

 

당시 단독주택에서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아파트는 중앙난방이 공급되었고 수도꼭지만 틀면 더운 물이 콸콸 나왔습니다. 거기에 더해 깔끔한 입식부엌. 당시 열악했던 단독주택 상황과 대비가 되어 가정주부들의 찬탄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다세대주택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다세대주택이 아파트에 비해 떨어지는 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다세대주택이나 단독주택이 아파트와 뭐가 다를까요?

 

가스보일러로 난방 잘되고 수도꼭지만 틀면 더운 물 잘 나오는 것 동일합니다. 예전의 단독주택들은 허술하게 날림으로 지은 경우가 많았지만 요새 단독주택들은 건축자재, 단열처리 등이 훌륭합니다. 아파트에 비해 춥다는 것도 예전 경험의 소산이라고 봅니다.

 

 

ㅇ 아파트의 환금성

 

아파트의 장점으로 환금성이 얘기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저는 환금성이 얘기되는 자체가 이미 한국에서 아파트는 폰지 게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폰지 게임, 투기의 기본적 특징 중 하나가 후발주자가 더 비싼 가격에 내 물건을 사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매입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는 표준화 되어 있기 때문에 거래가 편리하고 환금성이 좋다고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붕어빵 틀에 찍어내듯 대량생산된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것에 대해 끔찍하다고 말합니다. 집단수용소나 군대 막사가 아닌 바에야 어떻게 그렇게 인간의 개성을 말살하는 끔찍한 주거형태가 존재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저는 프랑스 사람들의 생각이 더 맞다고 봅니다.

사람의 삶의 터전인 주택이 표준화되어 있고 주식처럼 사고파는 투자상품이 된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봅니다.

 

아파트에 비해 단독주택은 표준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성이 강한 것이지요. 삶의 터전인 주택은 그 터전의 주인을 반영하여 개성을 갖는 것이 정상이라고 봅니다.

 

주택은 환금성이 적은 것이 정상이라고 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주택이 환금성이 높은 거래상픔으로 여겨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고 있다는 미국, 영국, 스페인이 모두 그렇지 않고, 부동산 버블 붕괴로 유명한 일본에서 조차 주택이 환금성 높은 거래상품으로까지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게 되면 일본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나라에서 주택(아파트)이 환금성 높은 투자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상당한 버블이 끼어있다는 증거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생물학, 의학에서는 종 내에 다양한 변종들이 존재할 때 종 전체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나중에 아파트 단지의 슬럼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해서 사람들이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아파트에 대해 탈출 러시가 빚어진다면,

아파트가 표준화 되어 있다는 사실이 일대 재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아파트 내가 인테리어 새로 했고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를 잘했는데

우리 단지는 공동으로 유지보수비를 많이 투자해서 관리를 잘해왔는데

라는 항변이 시장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 입니다.

 

이에 비해 단독주택은 표준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파트처럼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개성이 강하므로 감가상각에도 잘 견디어내는 특성이 있습니다.

 

담쟁이가 벽을 덮고 있는 낡은 단독주택이 까페로 리모델링되는 경우들을 봅니다. 낡은 창틀은 알루미늄 섀시로 교체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운치를 높여주는 존재가 됩니다. 주택이 낡아서 감가상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고색창연함이 오히려 가치를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주택도 표준화되어 있는 것보다 개성이 강한 것이 가치가 더 높지 않을까 합니다. 단독주택은 마당에 심어져 있는 나무 한 그루가 그 집만의 가치를 더합니다.

 

감가상각 기간, 수명문제도 그렇습니다. 건초님께서 콘크리트의 공학적 수명이 65년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입니다.

 

경북 안동에 있는 봉정사 극락전은 늦게 잡아도 1368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 무량수전은 역시 늦게 잡아도 1376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이 두 목조건물은 600년이 넘도록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것입니다. 흔히 콘크리트가 자연재료에 비해 엄청 강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 쉬운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한 것입니다.

 

 

ㅇ 아파트의 안전성

 

많은 분들이 아파트가 단독주택보다 안전하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는 듯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생각해볼 여지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객관적인 통계를 비교해보고 싶은데 자료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통계수치를 비교하려면 비교대상 선정이 중요합니다. 난개발 상태이고 방범활동이 허술한 곳과 아파트 단지를 비교하면 대상 선정 자체가 불공정한 것이지요.

 

일산의 정발산을 배산으로 하고 자리잡은 단독주택 단지(마을 이름을 잘 모르겠네요. 김대중 전대통령의 거처가 이 곳으로 알고 있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가 있는데, 이 곳과 아파트 단지의 범죄 발생률을 비교해볼 수 있다면 좋을 듯 합니다.

 

이 마을을 선정한 이유는 우리 나라 단독주택 단지 중에서 그나마 제대로 개발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단독주택 단지의 특징은 담이 없습니다. 이 글 뒤에 설명드리겠지만 담이 없는 것이 범죄발생률을 낮춥니다.

 

아파트가 안전하다는 고정관념도 80년대 초에 형성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 뒤로 아파트의 안전성은 많이 떨어졌다고 봅니다. 저는 여기서도 우리들이 느끼는 체감의 지체현상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좀 오래된 아파트를 보면 건물 입구마다 경비실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아파트를 짓고 입주했을 때는 입구마다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경비원 수를 줄였고 그 때문에 여러 동을 한 사람의 경비원이 지킵니다. 그 대신 CCTV를 설치하고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자동출입문을 설치해놓았습니다.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요?

 

작년 3월경에 9 뉴스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모 아파트 엘리터이터 안에서 초등학생을 마구 때리고 성폭행하려 했던 범행장면입니다. 그 뒤 더 충격적인 장면이 보도되었는데, 이 범행이 있기 직전에 범인은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근처의 여러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를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CCTV에 잡힌 그 장면이 보도되었고 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CCTV와 자동출입문은 전혀 주민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지 못합니다. 중국집 배달부도 비밀번호를 알고 있고, 모를 경우 주민이 올 때까지 잠시 기다리다 따라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일어나는 범죄도 많습니다.

 

아파트 현관의 우유투입구를 통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절도사건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범인들이 우유투입구를 통해 기구를 집어넣고 문을 여는 동안에도 아무 꺼리낄 것이 없는 것이 아파트의 구조입니다.

 

제가 보기에 매우 우려스러운 범죄형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빈 아파트임을 확인하고 아파트 층간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부녀자가 혼자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순간 따라 들어가서 범행을 저지르는 형태입니다. 이 범죄형태는 막을 방법이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아파트가 안전하다는 생각은 문만 걸어잠그고 있으면 사방이 막혀있어서 안전하다는 생각도 강한 듯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집안에 사람이 있고 문을 걸어잠그고 있는 한 범죄가 발생할 확률은 무척 낮습니다. 이는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범죄의 대부분은 빈집 절도이거나 아니면 검침원 등을 가장하여 집주인 스스로 문을 열게 만들거나, 집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을 노리거나 하는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이 경우 주변에서 지켜보는 눈이 없는 아파트가 더 위험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보기에 계단식 아파트보다는 복도식 아파트가 범죄 발생률이 압도적으로 적을 것입니다. 우유투입구를 통해 문을 열었던 절도범의 경우 복도식 아파트에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보는 눈이 있거나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누구나 자산가치가 더 높다고 선호하는 계단식 아파트의 경우 범죄를 막아줄 주변의 지켜보는 눈이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미국에 있는 외삼촌 댁을 다녀오시고 들려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미국의 단독주택들은 담이 없고 길에서 집안이 다 들여다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외숙모에게 물었답니다. 미국에는 흉악한 범죄가 많다고 하는데 이렇게 집에 담장도 없고 해서 방비가 되겠느냐고요.

 

이에 대해 외숙모는,

담장이 없는 것이 더 안전하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담장을 둘러쳐서 침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지켜보기 쉽게 담장을 없애고 최대한 주변 시선에 집을 노출시킴으로써 범인들이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방식이 범죄를 막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정발산 마을이 이런 사고방식을 도입하여 담이 없는 마을입니다.

 

프랑스에서는 경찰들이 대낮에도 출입하기를 꺼리는 곳이 아파트입니다. 아파트가 안전하다는 생각은 선입견에 불과한 것일 수 있습니다. 특히 앞으로 슬럼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 줄레조 교수는 흥미있는 지적을 합니다. 서울시민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로 안전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자기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인 서울의 시민들이 안전노이로제에 걸린 듯이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합니다.

 

우리 모두의 통념과 달리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가 맞습니다. 전세계에서 젊은 여자 혼자 밤길을 걸을 수 있는 대도시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안전노이로제에 걸려있는 것인지 곰곰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파트가 안전하다는 생각은 80년대초에 형성된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고정관념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파트가 단독주택보다 더 안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이 평균적으로 매우 안전한 도시라서 범죄발생률이 낮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객관적인 통계치가 없지만 사실상 단독주택보다 범죄발생률이 더 높은데도 전체 평균 자체가 낮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느낌이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금 당장 선택의 문제로 가면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은 저도 인정합니다. 일산의 정발산 마을 정도되는 단독주택 단지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주택단지들이 그동안 많이 개발되었다면 선택할 수 있는 대안들이 지금도 존재하겠지요.

 

과거 단독주택 단지였던 곳들도 모두 허물고 다세대주택들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정부에서 아파트로 재미(?)를 보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단독주택 지역은 trigger-happy한 상태로 주거환경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야 지방자치제도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면도로 거주자 우선 주차제, 공용주차장 설치, 지역주민센터 활성화 등이 시작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앞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재개발 사업이 추진될 때 민간의 영리사업으로 방치해 둘 것이 아니라 공영개발 방식을 도입하고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단독주택과 3층짜리 타운하우스, 5층 정도의 연립주택, 모두가 같이 이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 배치된, 그리고 지하주차장도 설치된 복합 단지 형태로 개발되어지기를 희망해봅니다. 아파트 만이 선택대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도록 말이지요.

 

참고로 타운하우스의 town은 영영사전을 찾아보면,

 

a place with many houses, shops/stores, etc. where people live and work. It is larger than a village but smaller than a city

 

라고 나옵니다.

 

이에 대한 적절한 우리말 번역을 생각해보면 읍내’, ‘도회지’, ‘시가지정도의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구에서 타운하우스는 전혀 전원주택이 아니고 웰빙을 추구하는 주거형태도 아닙니다. 그러려면 단독주택 형태가 되어야지 옆집과 벽을 공유할 이유가 없지요.

실제로 서구의 타운하우스들은 모두 시가지 내에 지어지는 것입니다. 시가지 내에서 공간을 절약하기 위해 짓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타운하우스가 웰빙을 추구하는 주거형태, 고급스런 주거형태로 포지셔닝되고 있는 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