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센텀시티는 '대박', 부산은 '쪽박'?

2009. 3. 9. 18:38건축의 외계

신세계 센텀시티는 '대박', 부산은 '쪽박'?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81196&PAGE_CD=

[르포②] 대형유통업체 자본유출에 부산은 무방비


 ▲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는 프레오픈(사전개장)부터 개장날까지 사흘동안 81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대박'을 터뜨렸다.  ⓒ 최경준

'대박'이다. 신세계 센텀시티는 개점 첫날인 3일에만 19만 명(신세계 자체 집계)에 육박하는 고객을 불러 모았고, 매출은 44억원을 냈다. 지난 1~2일 프레오픈(Pre-open) 실적까지 더하면 81억원에 달한다.

경쟁사 매출이 동반 상승한 것도 눈에 띈다. 신세계 센텀시티와 불과 5~6미터 거리에 맞붙어 있는 롯데백화점 센텀점도 이날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배가 늘어난 10억여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신세계 센텀시티는 이런 흐름을 이어가 올해 매출 4300억원, 5년 내 연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산 롯데백화점의 연매출은 7600억원대다.

그러나 부산지역 소비자가 소비한 자금이 지역 내에 유입되지 않고 이들 대기업 유통업체들의 본사가 있는 서울로 빠져나가면서 부산지역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대형 유통업체들만의 '화려한 돈 잔치'에 부산 경제는 빈껍데기만 남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자본 역외유출에 부산이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개장 첫날, 빨간색 속옷 사려는 행렬 비롯해 인산인해

3일 오전 9시 10분경,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에 소재한 신세계 센텀시티 앞. 개장이 1시간이나 남았지만 이미 200여 명의 고객들이 몰려와 대기하고 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대기하고 있던 고객들의 수가 순식간에 3~4배로 불어나서 300~400미터 넘게 줄을 섰고, 신세계 측은 안전사고를 우려해 출입구에 수십 명의 안전요원을 배치했다.

오전 10시 30분, 신세계 경영진과 지역 유력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테이프 커팅 행사가 끝나고 개장이 선언됐다. 순간 11개의 출입문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고객들로 인해 매장 내 각층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개장날인 3일,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있다. ⓒ 최경준

'조르지오 아르마니' '루이비통' 등 명품 매장이 몰려있는 1, 2층 곳곳에서는 고객들이 수십 미터씩 장사진을 이룬 모습이 연출됐다. 이들 명품점은 프레오픈을 포함한 3일 동안 전체 매출의 43%인 35억원을 올려, 효자 노릇을 단단히 했다.

특히 6층 란제리 매장은 오후 들면서 빨간색 속옷을 사려는 행렬로 북새통을 이뤘다. '개업점포에서 빨간색 속옷을 사면 가족에게 행운이 온다'는 영남지역 여성들 사이의 속설이 경기침체와 맞물린 탓이다.

비비안, 비너스, 트라이엄프 등 여성 속옷 브랜드들은 프레오픈 기간동안 5000만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개점날인 3일에는 8억 2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웬만한 백화점 하루 매출에 육박하는 액수다. 신세계측은 빨간색 속옷 물량이 동이 나자 전국 각 점포의 빨간색 팬티들을 부산까지 공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에서 번 돈을 서울로? 처음 듣는데..."

신세계 측은 당초 이날 내점 고객을 10만명 정도로 예상했지만, 이를 훌쩍 뛰어넘는 인파가 몰리면서 '국내 최대 규모 복합쇼핑몰'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당초 매출 목표에 비해 130%의 실적을 달성하며 대박을 터뜨린 것은 신세계 측으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 날 물건을 구매한 고객들 중에서 신세계 센텀시티의 매출이 전부 서울 본사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딸과 함께 매장을 방문한 조순영(42·서면)씨는 "대형 백화점 때문에 재래시장이나 소규모 상가가 죽는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면서도 "부산에서 번 돈을 서울로 가져간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며 의아해 했다.

심지어 박정숙(60·해운대)씨는 "(돈이)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는데, 서울은 우리나라 아니냐"며 "외국 사람들이 가져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객은 "이런 백화점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것으로만 알고 있지, 돈이 (부산 밖으로) 빠져나간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해봤다"며 "그게 사실이라면 무슨 재단 같은 거라도 만들어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통계청 KOSIS(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시 소재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의 경상 판매액은 약 3조6000억원에 달한다. 신세계 센텀시티가 새롭게 개점한 데 이어 앞으로 현대백화점 영패션전문관 등이 새롭게 문을 열면 이런 대형유통업체들의 매출액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신세계나 롯데의 규모를 보면 매출액이 엄청난데, 자금이 전부 서울로 가면 지역의 산업자금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기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백화점의 지역법인화나 지역사회와의 협약 등을 통해서 지역 자금이 지역 금융시장에 머물게 할 수 있는 보완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구와 광주 등에서는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중소기업 발전 재원을 예치케 하거나, 지역현지 독립법인화를 통해 세입을 확충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개장날인 3일 19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사진은 백화점측에서 마련한 오픈 기념 행사를 구경하고 있는 부산 시민들. ⓒ 최경준

신세계에 행운 안겨 준 부산시?... "무리한 도시개발이 원인"

부산이 대구와 광주 등에 비해 대형 유통업체의 무분별한 역외유출 행태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형 유통업체의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부산시가 고용 및 경제 창출 효과 등에만 현혹돼 지역경제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차진구 부산경실련 사무처장은 "부산 경제가 계속 침체되자, 부산시에서 무리한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아무런 제약조건 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편법을 동원해 여건을 마련해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센텀시티 산업단지가 대표적인 예다. 당초 수영비행장 터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SK가 사업을 추진했지만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자, 부산시가 '센텀시티주식회사'를 설립해 3500억원의 차입을 받아 부지를 매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 이자만 6500만원이 빠져나가면서 분양에 급급해진 부산시는 결국 산업단지라는 주목적과 상관없이 용적률 특혜를 줘가며 '더 샾 센텀파크' 등 주택단지를 먼저 조성했다. 신세계 센텀시티 부지의 용도도 당초 상가가 아닌 위락시설이었다. 하지만 용도 변경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마침 부산 진출을 노리고 있던 신세계에게 알짜배기 부지를 그야말로 헐값에 넘겼다.

 실제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제2도시 부산에 백화점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신세계의 약점이었는데 2만3000여 평의 매물이 나왔다. 입찰하면서도 기대는 안 했는데 결국 단독 응찰로 부지를 구했다"며 이를 '세 가지 행운' 가운데 첫 번째로 소개했다.

 부산시는 센텀시티 외에 현재 북항 재개발, 강서물류도시 등의 도시개발 사업을 추진중이다. 앞으로도 대형 유통업체가 손쉽게 부산에 진출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남아있는 셈이다.

 차진구 사무처장은 "이제라도 부산시에서 대형 유통업체 지역진출의 명암을 구분하고 지역민들과 지역경제가 더불어 발전할 수 있는 대책 마련과 정책을 내 놓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