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 다니는 우리집’…부동산이 아니랍니다

2009. 3. 20. 18:18건축의 내계/집

‘들고 다니는 우리집’…부동산이 아니랍니다

[한겨레]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이동식 주택 만든
 건축가 이현욱씨

새집 지으려 멀쩡한 건물 허무는 세태 놀라
너무 심한 자원낭비란 생각에 실험 시작
트럭에 싣도록 블록형 제작…건축비도 저렴
"이웃서 햇빛 가린다기에 3m쯤 밀어 옮긴적도"


누구나 남들보다 많이 갖고 있는 것이 있다.
건축가 이현욱(39·광장건축 대표)씨에겐 '실험정신'이란 것이 남들보다 훨씬 많은 편이다.

                                                                       

이 실험정신 충만한 건축가가 신참이었던 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이씨는 한 재벌 2세의 신혼집 설계 경쟁 프로젝트에 참가한다. 서울 최고 부촌 재벌 회장 집 옆에 2세의 신혼집을 새로 짓는 설계 응모였는데, 결과적으로는 낙선한 이 작업에서 이씨는 무척 놀라운 장면을 봤다. 아들 부부에게 새집을 지어주고 싶었던 재벌 회장은 지은 지 6개월밖에 안 된 옆집을 웃돈을 얹어주고 사서 그 집을 헐어버리고 다시 새집을 지었던 것이다.

잘 지은 새집을 허는 데에만 당시 돈 5000만원을 아낌없이 써버리는 것을 보고 이씨는 너무 아까웠다. '저 좋은 집 헐지 말고 나를 주지.' 그러나 집이란 것은 땅에 콕 박혀 들고 다닐 수도 없는 일. 그때 이씨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들고 다닐 수 있는 집을 지으면 어떨까?'

10년쯤 지나 이씨는 분양 받은 경기도 죽전 택지에 자기 집을 짓게 됐다. 그리고 오랫동안 구상했던 실험을 마침내 실현했다. 땅 위에 그냥 올려놓기만 하면 되는 이동 가능 주택, 이사 갈 때는 정말 트럭에 싣고 가지고 갈 수 있는 집, 이름하여 '모바일 하우스'(사진)를 지은 것이다. 집 자체도 실험이고 이 집에서 사는 것도 실험이다. 한국에서 하나뿐인 집에서 2년째 '실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 소장을 만났다.

­겉으로 봐서는 정말 이동 가능한 집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거죠?

"집 자체를 컨테이너 크기와 똑같이 지었습니다. 스틸하우스로 3미터 곱하기 6미터여서, 그대로 컨테이너차에 싣고 다닐 수 있습니다. 이 상자 모양 집 위에 하나를 더 얹으면 그대로 2층이 되는 거죠. 1층과 2층은 볼트로 붙였다가 옮길 때 풀어서 들고 가면 됩니다."

­땅 파고 기초 다지는 공사 같은 것들이 필요 없을 테니 짓기는 참 쉽겠습니다.

"콘크리트 양생(굳히기) 그런 것들이 없죠. 공사에 두 달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실험하느라 길어진 것이지 실제로는 일주일이면 충분히 짓습니다."

­일주일이요?

"그럼요. 골조 공사는 하루 걸렸습니다. 이 집을 거의 다 지었을 때쯤 이웃에서 햇빛을 가릴 것 같다고 좀더 집이 물러날 수 없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러지 뭐, 그리고 7명이서 집을 슬슬 밀어서 3미터쯤 뒤로 옮겨줬습니다."

­공사비는 얼마나 들었어요?

"평당 350만원 정도?"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공사비가 많이 든다. 아파트는 대량으로 지어 재료비 등의 단가를 낮출 수 있지만 단독주택은 그렇지 못한 탓이다. 아파트 공사비는 대략 수도권일 경우 순수 건축비용만 평당 250만~300만원 정도다. 같은 재료로 다세대나 단독주택을 지으면 더 비싸게 든다. 다세대는 평당 300만원 이상, 단독은 400만원 이상, 전원주택은 500만원 이상이다. 그러니 350만원이면 무척 적게 든 셈이다.

­도대체 왜 이런 집을 지을 결심을 했습니까?

"그때 재벌 2세 새집을 짓자고 멀쩡한 집을 허는 것을 보고 집이 땅에 고정되어 있는 것의 문제점을 실감했어요. 요즘에는 재개발 등으로 집들의 수명이 짧습니다. 집이란 게 헐면 다 폐자재가 되어버려요. 주택도 자동차처럼 중고 시장이 있어서 사서 들고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러면 자원도 재활용될 수 있으니까, 환경적으로 의미 있는 실험이 될 것 같아 해보기로 했습니다."

­난방이 가장 궁금한데, 어떻게 해결합니까?

"이동식 주택이니 도시가스를 안 했죠. 이동 가능한 주택이니 전기로 모든 것을 해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전기로 생활했는데, 첫달 전기요금이…, 얼마쯤 나왔을 것 같으세요?"

­글쎄요, 많이 나왔나요?

"2000킬로와트가 나왔습니다. 일반 가정집이 한달에 한 300킬로와트 정도 씁니다. 요금은 119만원이 나왔어요. 아내가 거의 돌아버렸습니다. 저보고 '건축가 맞아?'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엘시디 텔레비전이 그렇게 전기를 많이 먹는지 몰랐어요. 2000킬로와트에서 냉난방이 1000킬로와트 정도, 400킬로가 취사에 들었어요. 태양열 전기도 생각해봤는데 온 지붕 전체를 덮어도 부족해서 할 수가 없었어요."

이씨는 이 실험 덕분에 에너지 문제, 환경 문제, 건축 전반에 대해 건축가로서 여러가지를 실감하고 더욱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면서 생기는 노하우 축적도 만만찮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기로 난방을 하는 것이 최고 바보짓이더라고요. 그래서 엘피지로 바꿨어요. 같은 가스라도 이동식으로 연결할 수 있으니까. 가스비는 월 50만원에 전기요금은 3만원으로 떨어졌어요. 그런데 이런 시행착오를 한 게, 에너지 자료 등 좀 참고할 만한 기존 자료들이 거의 없어요. 아무도 안 해봤나 봐요."

­아무리 의미가 있어도 불편함을 감수하자고 작정해야 가능한데 참 과감합니다.

"처음에 제가 이 생각을 했을 때는 애가 없었는데 이제 아이들(이 소장은 두 자녀가 있다)이 자라니까 실험을 하기 좋겠더라고요. 전기며 가스니 이런 것들에 대한 자료가 착착 쌓이니까요. 아내는 싫어해요. 왜 우리가 실험을 해야 하냐 그러죠."

­원래 실험정신이 그렇게 강합니까?

"네, 강해요. 여기 오기 전까지 옥인동에서 살았어요. 저희 사무소가 하려다가 결국 안 된 것으로 옥인동 재개발 사업 설계가 있었는데, 재개발 설계를 하려면 그 동네에 살아봐야 잘 알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로 갔죠. 그리고 이번에 이 실험하려고 죽전으로 이사왔어요."

이씨의 집은 66㎡짜리와 33㎡짜리 두 건물에 방 한칸짜리 상자 모양 미니 건물로 이뤄져 있다. 이 미니 건물은 아이들 놀이방인데 천장을 유리로 해서 별빛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변화를 주고 싶어 건물 위에 올리놓기만 하면 바로 옥탑방이 된다. 집 전체가 조립과 이동이 쉬우니 가구 옮기듯 마당 안에서 집의 위치와 배치를 바꿔가며 살 수 있다. 이씨는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함께 살겠다면 한 동 더 지어 붙이면 되고, 독립하겠다고 하면 그냥 들고 가라고 하면 된다"고 웃었다.

­2년쯤 살아보니 불편한 것이나 고칠 것이 있나요?

"철제파이프 외벽 구조인데 역시 단열이 가장 큰 시행착오였어요. 그래서 다음에는 목재로 지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이제 리노베이션을 하자고 해요. 두 채로 나눠놓은 집을 하나로 붙여 달래요. 그냥 밀어서 붙이면 되니까 그렇게 해줘야죠."

­건축가로서의 재미도 있겠지만 의미가 있는 실험이겠습니다.

"우리 건축 시장에서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집은 땅과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 땅값은 쳐줘도 그 위에 있는 건물값은 안 쳐줍니다. 땅임자가 바뀌면 건물을 헐게 되는데, 그런 낭비가 어디 있어요? 지금은 아파트만 건물 그 자체가 경제적으로 값을 받아요. 그래서 다들 아파트를 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집은 땅은 팔고 집은 그대로 들고 가서 또 새 땅에 다시 집 지을 필요 없이 그대로 쓰면 됩니다. 또 이런 조립식 모바일 하우스는 조립해서 붙이면서 집의 크기를 원하는 대로 늘리고 줄이기가 쉬워요. 나중 생각해서 괜히 미리 크게 지을 필요도 없고 항상 현재 형편에 맞게 지을 수 있어요. 낭비가 없죠."

­주변에선 뭐라고 하던가요?

"누가 괜찮다고 특허를 내서 특허료를 받으래요. 전 반대예요. 사람들이 저희 집을 보고 마구마구 베껴 가서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건설 이런 데서 이런 거 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 집으로 이런 거 더 안 지으시나요?

"사람들이 재밌다며 주문들을 해서 5호까지 벌써 예약이 들어왔어요. 그리고 이동식 주택은 아니지만 여기서 얻은 노하우로 남양주에 목재주택 타운하우스 단지를 짓고 있어요. 그동안 대형건설사들이 고급 빌라 지어 비싸게 팔면서 빌라나 단독주택은 아파트처럼 건설비용을 낮출 수가 없어서 비쌀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저는 최대한 낮춰서 아파트 건축비 비슷하게 만들어 보려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싼 단독주택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단지가 완공되면 저희 집도 그리로 들어가서 살 거예요. 그래야 고객들에게 믿음도 주고 또 실제 살아보니 어떤지 자료도 모을 수 있잖아요."

­그럼 이 집은 어떡하고요?

"여기요? 자기한테 팔라는 사람들이 벌써 4명이에요. 건물값만 4000만원 주겠대요. 그냥 집이었으면 헐어야 할 것을 그분들은 그냥 가져가 쓰면 되고, 저도 괜찮은 값 받고 파니 돈 버는 거죠."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